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해군 잠수함 정비 중 화재가 발생해 작업자가 숨진 사고를 두고, 회사의 안전관리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번 사고를 “예견된 인재(人災)”로 규정하며 밀폐 구역에서의 대피 경로·비상 대응 체계 부재와 매뉴얼 미비를 문제 삼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지난 9일 오후 1시 58분께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창정비 중이던 214급 잠수함 ‘홍범도함’에서 발생했다. 당시 잠수함 내에서 작업하던 47명 중 46명은 대피했지만, 협력업체 소속 60대 여성 노동자 A씨는 내부에 고립돼 33시간여 만에 시신으로 수습됐다. 회사는 사고 조사에 협조하는 한편 재발 방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폐쇄적 구조 특성 아는 데도 대책은 없었다”
노조는 11일 성명을 내고 “잠수함의 구조적 위험을 방치한 예견된 인재”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잠수함이 화재 발생 시 대피가 극도로 어려운 폐쇄적 구조를 지닌다는 점을 사측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현장 안전 대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노조는 사고 장소가 밀폐 구역이며 원칙적으로 2인 1조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해당 기준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과 함께, “대피 경로 확보와 비상 상황 대응 체계가 전무했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문제 제기는 단순 사고 책임을 넘어, ‘대응 가능성’ 자체가 부족했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기 진압 매뉴얼조차 없었다”…2차 사고 위험 지적
노조는 구조 작업 과정의 매뉴얼 부재도 논쟁의 핵심으로 삼았다. 노조에 따르면 잠수함은 납축전지 배터리를 취급하는 선박인 만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전기적 특성에 따른 2차 위험(예: 합선 등)을 고려한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고 당시에는 구조 작업에 대한 매뉴얼조차 없었고, 초기 단계에서 ‘소화수’로 진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전기 쇼트가 발생하는 등 2차 사고 위험까지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설명은 “화재 진압의 방식”과 “2차 위험을 통제할 절차”가 체계적으로 준비돼 있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노조는 생명을 구해야 하는 현장이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됐다고 주장하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수사·감독도 진행 중…원하청 안전기준 재점검 요구
사고 이후 수사와 행정 절차도 진행 중이다. 경찰은 안전책임자를 가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며, 고용노동부는 원하청을 상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측은 관계기관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고, 향후 안전관리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노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잠수함 건조 및 정비 현장 안전 기준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고인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현장의 위험 관리 체계가 구조적으로 점검돼야 한다는 취지다.
조선·군수 정비 현장의 안전 ‘체크리스트’가 시험대
이번 논란은 개별 사업장 문제를 넘어, 특수 환경에서의 안전관리 방식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잠수함처럼 밀폐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연기·가스 확산, 피난 경로 제한, 전기 설비·배터리 취급 특성 등으로 인해 대응 난도가 크게 높아진다. 노조가 문제 삼은 ‘대피 경로·비상대응 체계’와 ‘초기 진압 매뉴얼’은 결국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빨리, 얼마나 안전하게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요소들이다.
노조는 또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 노동에 내몰리면서 안전교육조차 충분히 받지 못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은 산업 현장에서 반복돼 온 ‘안전의 외주화’ 문제로 연결되며,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 범위와 개선 요구의 수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What’s Next
당국의 수사 결과는 어떤 안전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는지, 또는 원칙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윤곽을 제공할 전망이다. 경찰은 안전책임자에 대한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따져 원하청의 책임과 의무 이행 정도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조선소와 군수 정비 현장 전반에서는 대피 동선 확보, 밀폐 구역 작업 기준(2인 1조 등), 화재 초기 대응(배터리·전기 설비 특성 반영), 비상 대응 매뉴얼 실효성 같은 항목이 재점검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이 ‘재발 방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 적용 수준까지 이어질지, 후속 조사와 제도 보완 결과가 관전 포인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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