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와 양우석 감독, 배우 박중훈·유지태 등 영화인 581명이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 국면을 알리며 정부와 국회에 구조 개선을 촉구했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2026년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 대책’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계류 중인 ‘6개월 홀드백 법안’ 철회,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스크린 상한제) 도입, 대규모 제작 펀드 조성과 세제 혜택을 핵심 처방으로 제시했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한국 영화 시장의 침체를 ‘붕괴 위기’로 규정했다. 이들은 지난해 국내 극장 관객 수가 약 1억 600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억 2,600만 명) 대비 47% 수준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또한 회복률이 70% 이상인 미국·프랑스·일본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의 회복 속도가 현저히 뒤처져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OTT 공세 넘어 ‘수직 계열화·스크린 독점’이 원인
연대회의는 침체의 원인으로 넷플릭스 등 OTT의 영향뿐 아니라, 대기업이 제작·배급·상영을 잇는 수직 계열화가 심화된 구조를 지목했다. 여기에 극장 3사(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사실상 스크린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며 작품별 노출과 상영 기회를 제한해 왔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제시했다.
즉,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는 하나의 외부 요인일 뿐이고, 실제로는 작품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통·상영의 작동 방식이 왜곡됐다는 주장이다. 연대회의는 영화 투자자와 제작자 입장에서 상영과 수익 회수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는 구조가 누적돼 산업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렸다고 본다.
첫 번째 요구: “홀드백 철회” — ‘블랙아웃’ 비판
영화인들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인 ‘6개월 홀드백 법안’ 철회다. 이 법안은 극장 상영 종료 이후 최대 6개월 동안 다른 플랫폼에서 작품 유통을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이를 두고 “정상적인 홀드백이 아니라 소비자의 관람을 막는 ‘블랙아웃’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연대회의는 상영 기간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통만 차단하면,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져 오히려 시장의 재투자 동력을 꺾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상영 기간과 스크린 운영이 먼저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시간을 묶는 규제’가 관객 접근성과 수익 창출 경로를 동시에 좁힐 수 있다는 논리다.
두 번째 요구: 스크린 상한제(스크린 집중 제한)로 “다양성 회복”
연대회의의 두 번째 핵심 제안은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 도입이다. 특정 흥행작이 다수의 상영관을 독식하는 이른바 ‘스크린 몰아주기’를 억제하기 위해, 단일 영화의 좌석 점유율에 상한선을 두자는 취지다.
연대회의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다양한 영화가 더 오래 극장에 머물 수 있어야 실질적인 투자비 회수와 극장 수익 개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특정 작품의 상영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면서 중소 제작사나 신인·다양성 장르가 ‘첫 관문’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요구: 제작 펀드 1천억 원(이상 2개)과 세제 혜택
연대회의는 제작 활성화를 위한 재원 조성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중심이 되어 1천억 원 규모의 펀드를 2개 이상 조성하고, 개인 및 법인 투자자(LP) 유치를 위해 조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우석 감독은 “투자 환경이 시장에서 커뮤니티로 변하고 있다”며,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투자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덧붙였다. 즉 단순히 정책 자금의 투입을 넘어서, 투자자 저변을 넓혀 제작 리스크를 분산하고 자금 흐름을 안정화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극장·배급사 모두에게 긴급”…정부·업계 논의 촉구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은 “지금의 대책들은 극장과 배급사 등 영화계 모두에게 절박하고 긴급한 해법”이라며, 업계와 정부가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책을 두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산업 내 갈등을 가리기보다, 상영권·유통 규칙·투자 구조까지 포함한 ‘시스템 차원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데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향후 관전 포인트: 법안 논의와 스크린 정책의 구체화
이번 제안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국회에서 계류 중인 홀드백 법안의 처리 방향과 스크린 집중 제한을 위한 제도 설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특히 ‘홀드백의 효과’를 주장하는 쪽과 ‘블랙아웃’ 우려를 제기하는 쪽의 입장이 맞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또한 1천억 원 규모 펀드와 세제 혜택은 재원·운용 방식·성과 지표가 어떻게 설정되는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영화계가 요구하는 것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극장에서 작품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과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수익 구조를 함께 복원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후속 논의가 언제, 어떤 형태로 구체화되는지가 당분간 가장 중요한 관찰 포인트로 떠올랐다.
댓글